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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과 점집 사이memo 2024. 11. 25. 12:02728x90
최근에 큰 프로젝트를 마치고 한달간 유럽에 있다 돌아온후 2-3주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정신적으로도 꽤 힘들었다. 그래서 그저 좀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수다도 떨까해서 오랜만에 친구랑 전화를 했다.
"왜 병원을 안가?"
일주일에 최소 세번정도 운동도 가고있고 조금씩 다시 해야하는 일에 집중하고있다. 정신이 돌아오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기가 좀 약한 탓인지 하루하루 아슬아슬하다. 감정이나 마음도 잘 다스려지지 않아서 혼자 끙끙거리지만 그런대로 잘 버티고 있다.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마음을 잡지 못해서 못난말을 하는 나에게 심리상담을 업으로 삼는 친구는 "왜 병원을 안가?" "ADHD 약 먹어. 그거 진짜 도움돼"라고 조언을 해준다. 나에게서 전해지는 무력감때문에 자기도 무력하다고 한다. 그 무기력함은 자기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니 해결을 하려면 병원을 가라고 한다. 병원을 가면 안가는것보단 낫겠지. 필요하면 약도 도움이 되겠지. 나도 안다.
그런데, 이 따뜻함이 뭔가 퍽퍽하다. 분명 차가운건 아닌데, 텅비지 않았는데, 긴 대화를 했는데 든든함이 없다. 오히려 정신이 차려지고 독기가 생긴다. 나는 나를 더 밀어붙이기로 한다. 앞으로 저 친구에게 저런 류의 이야기는 줄이겠다 생각한다. (아! 이걸 의도한거였나? 이거 좋은 방향인거야 아니면 부작용인거야?)
몇달전 스레드에도 심리상담에 대한 글을 올린적이 있다. 이 글에 비슷한 생각을 하거나 의견을 나눈 댓글들이 많았는데,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고 난뒤에 드는 생각들을 덧붙여서 좀더 풀어보기로 한다.
내가 심리상담, 정신과로 갈 생각을 안하는 이유
심리 상담으로 먹고 사는 친구도 있고, 심리학을 전공하기도 했으니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리상담을 받으러 가는 것에 대해 '머리로는'전혀 거부감이 없다. 그런데 여전히 발은 안 떨어진다. 가장 큰 이유는 '당신이 뭘 알아', '당신이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해 뭘 알고 도움을 준다는거야' 이런 생각들이 커서다. 바보같고, 소극적이면서 공격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안다.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생활하고 소통하면서 이런식의 단단한 마음을 갖지는 않는데,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간다고 생각하면 상담사에게는 이런 마음이 더 크게 떠오른다. 이런 생각이 드는걸 나도 어쩔수가 없다.
1. 내가 겪는 상황들을 그사람이 잘 이해는 할수있을까. (내가 회사차리고 맞닥뜨리는 문제들)
2.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얘기해야하는지.
3. 학교나 경력년수만 보고 어떤 사람일지 미리 가늠하기도 어렵고.심리상담과 접집 사이
예전에 대학원때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점집 방문에 대해 미니 논문을 쓴적이 있다. 우리가 모두 예상하듯이 종교를 갖고 있는지 여부와 점집 방문 빈도, 점집에 대한 거부감과는 아무 상관이없고, 오히려 더 많이 가는 것으로 나왔다. 많은 표본을 대상으로 한것은 아니니 신뢰도가 높진 않지만 꽤 재밌는 결과였다.
뭘 믿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믿음 자체를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볼수도 있고, 어디에든 의지하고 싶어서 조상님(?)까지 소환하고픈 한국 사회 씁쓸한 단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멀리 볼것도 없이 내 주변의 남자건 여자건 점집을 한번도 안가본 사람은 드물다. 많은 사람들은 답답하고 일이 잘 안풀리면 심리상담대신 점집을 먼저 쉽게 떠올린다. 심지어 심리상담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점집을 간다. 우리나라 심리상담의 경쟁자는 점집인거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될까. 심리상담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 우리가 심리상담을 통해 기대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일까. 우리나라만의 특성일까? 여러가지 궁금한점들이 떠오르는데, 누군가 이런 부분들을 연구하는 꽤 재밌을것 같다.
나는 너의 내담자가 아니라 친구야
오랫동안 심리 상담 일을 해온 그 친구와는 대학시절부터 가까웠다. 사회 초년생의 모습부터 직업적으로 성실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왔다. 성실함과 꾸준함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중 최고이고 언젠가 본인이 원하는 곳에 가장 느리게, 하지만 가장 빠르게 닿아있을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친구와 대화를 하다보면 내가 마치 '무료로 상담을 받는 내담자'처럼 눈치가 보인다. 내가 간간히 대화중에 말 한마디, 단어 표현들을 뱉고 난뒤엔 어김없이 냉큼 주워서 내 눈앞에 다시 펼쳐보인다. 그러니 입을 떼기전부터 신경이 쓰인다. 나의 말과 행동과 표정은 관찰의 대상이 되고, 바쁜 사람이 무료 봉사하듯 심리상담 해주는 것을 받아들여야하는 이상한 입장이 된다. 분명 나는 '심리 상담'을 해달라고 한적이 없는데, 그저 좀 힘들고 갈피를 못잡겠으니 곁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달라는 건데, 아는 것을 보이는 것을 잠깐 내려놓고 대할 수는 없는건지. 아는게 많아져서 그러기가 더 힘들어지는건지.
심리상담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나 역시 심리학을 전공했고, 분야는 약간 다르지만 소비자광고심리학 석사도 마쳤다.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성장에는 세계대전과 같은 온전치 못한 배경이 기여한바도 크지만, 인간이 인간으로 사는 한, 인간 스스로를 알고 싶어하고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면 절대 없어질리 없는, 확장과 발전의 가능성이 무한한 학문이라는 것도 안다.
다만, 그들이 인간을 관찰의 대상이나 분석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들의 눈앞에 있는, 자신들이 만나온 소수의 표본에 대한, 제한적인 생각들을 대리석처럼 단단하게 다듬어서 벽처럼 쌓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의 주변인들을 자신의 업의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기를 바란다. 관찰의 태도와 분석의 힘을 바탕에 두텁게 두고 있더라도(사실 뭘 배웠던 뭘하고 살던 우리는 모두 남들과 나 스스로를 자신의 기준으로 매일 관찰하고 분석하고 판단한다!) 대화의 방식에 대해선 좀 주의를 기울였으면 한다. 심리학이 해왔던 수많은 실험들과 관찰들도 결국 '그러면 어떤 식으로 소통할것인가'가 아니던가. 여전히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심리상담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조차 점집을 먼저 떠올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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